
40년 넘게 상인들과 함께해온 제 경험을 나누고자 합니다. 요즘 젊은 창업자들이 놓치는 부분이 있습니다. 혼자서 고군분투하다 지치는 모습이 너무 안타깝습니다. 사실 장사의 오래된 비결은 ‘관계’에 있습니다.
가게 문을 열고 닫을 때까지 손님 맞이하고, 장부 정리하고, 재료 준비하느라 정작 주변을 돌아볼 겨를이 없죠. 그러다 보면 어느새 정보에서 뒤처지고, 마음은 외로워지고, 손님 발길은 줄어들게 됩니다. 제가 수십 년간 지켜본 바로는, 이런 어려움을 이겨낸 상인들은 하나같이 ‘지역 네트워크’를 잘 활용했습니다.
1. 옆 가게는 경쟁자가 아닌 동반자입니다
젊은 사장님들 보면 옆 가게를 경쟁자로만 여기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오래된 시장이나 상가를 보세요. 비슷한 품목을 파는 가게들이 모여 있는데도 다들 장사가 되는 이유가 있습니다. 손님들은 여러 가게를 비교하며 구경하는 것을 좋아합니다. 한 곳에서 살 것을 정했더라도 다른 품목은 옆 가게에서 삽니다.
제가 예전에 광장시장에서 만난 한 포목상 주인장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 포목상들끼리 정보 안 나누면 누구랑 나눕니까? 아침에 열면 서로 인사하고, 시세 얘기하고, 어디 물건 좋다더라 얘기하고… 그렇게 50년을 버텼지.”
실천 방법:
• 점심시간이나 한가한 시간에 옆 가게에 먼저 인사드리세요
• “요즘 장사는 어떠세요?”, “이 재료는 어디서 구하시나요?” 같은 질문으로 대화 시작
• 손님이 찾는 물건이 없으면 옆 가게를 소개해드리세요, 그 인연이 나중에 돌아옵니다
내 옆 사장님이 제일 가깝고 솔직한 조언자가 될 수 있습니다. 큰 동네가 아니라면, 어차피 다 알고 지내야 할 사람들입니다.
2. 주민센터와 상인회는 보물 창고입니다
“동사무소는 서류나 떼러 가는 곳”이라고 생각했다면 큰 오산입니다. 요즘 주민센터와 구청은 소상공인을 위한 보물 창고입니다. 제가 자문했던 여러 상인회에서도 놀랄 정도로 많은 지원 프로그램이 있었습니다.
지난해 강남의 한 베이커리 사장님은 구청 창업지원팀을 통해 무료 SNS 마케팅 교육을 받고 매출이 30% 올랐습니다. 교육뿐 아니라 실제 가게 홍보까지 도와드렸죠. 또 다른 분은 상인회를 통해 지역 축제에 참여해 하루 매출이 평소의 세 배가 넘었습니다.
활용 방법:
• 동주민센터 게시판을 일주일에 한 번은 꼭 확인하세요
• 구청 홈페이지의 ‘소상공인 지원’ 메뉴를 즐겨찾기 해두세요
•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 지역센터에 한 번 방문해보세요
• 지역상인회 가입은 투자가 아닌 필수입니다
처음에는 “바빠서…”, “회비가 아까워서…”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실제로 참여해보면 그 몇만 원의 가치를 훨씬 뛰어넘는 정보와 인맥을 얻게 됩니다. 이런 모임에 참석하면 자연스럽게 내 가게가 알려지고, 지역 사정에 밝아집니다.
3. 협업은 비용 절감과 고객 확보의 지름길입니다
제가 성공적으로 컨설팅했던 사례 중 하나는 40대 후반의 반찬가게 사장님과 30대 초반의 꽃집 사장님의 협업이었습니다. 처음에는 서로 관련 없는 업종이라 생각했지만, 알고 보니 두 가게 모두 30~50대 여성 고객이 주요 타겟이었습니다.
두 분이 시작한 협업은 단순했습니다. “꽃집에서 5만원 이상 구매 시 반찬 한 가지 무료 쿠폰”, “반찬가게에서 3만원 이상 구매 시 생화 할인권”. 비용은 각자 3만원씩 전단지 제작비만 들었는데, 두 달 만에 새 단골이 20명씩 늘었습니다.
협업 아이디어:
• 비슷한 고객층을 가진 다른 업종 사장님 찾기
• 명절, 기념일 등 시즌에 맞춘 공동 할인 이벤트
• 두 가게가 함께하는 소규모 체험 행사
• 공동 배달 서비스로 배달비 절감
이런 협업은 대형 마트나 프랜차이즈가 결코 따라할 수 없는 지역 상인만의 강점입니다.
4. 지역 커뮤니티는 입소문의 시작점입니다
우리 시절에는 동네 사람들 입소문이 장사의 성패를 좌우했습니다. 지금은 그 입소문이 온라인으로 옮겨갔을 뿐입니다. 요즘은 손님들이 가게에 오기 전에 이미 인터넷으로 정보를 다 찾아봅니다.
경기도의 한 김밥집 사장님은 지역 맘카페에 “아이들 간식용 김밥 만들기 팁”을 진정성 있게 알려드렸습니다. 판매 글이 아니라 정보 공유였죠. 그런데 이 글을 본 학부모들이 가게를 찾기 시작했고, 이제는 학교 행사 때마다 단체주문을 받습니다.
활용 방법:
• 네이버 카페 지역 커뮤니티에서 전문가로 활동하기
• 당근마켓 동네가게 기능 활용하기
• 지역 SNS 계정과 친해지기
• 카카오톡 지역 오픈채팅방 만들기
중요한 점은 처음부터 홍보가 아닌 정보 제공과 진솔한 소통으로 시작하는 것입니다. “오늘의 식자재 가격 정보”, “계절 변화에 따른 상품 관리법” 같은 실용적인 정보는 항상 환영받습니다.
5. 가게는 물건만 파는 곳이 아닙니다
제가 50년 넘게 장사하며 깨달은 가장 중요한 사실은, 사람들은 단순히 물건이 필요해서가 아니라 ‘관계’가 있는 곳에 다시 찾아온다는 것입니다.
대구의 한 60대 그릇가게 사장님은 손님들에게 계절마다 음식 담는 법, 상차림 비법을 조금씩 알려주었습니다. 그런데 이게 입소문이 나서 지금은 결혼하는 젊은 부부들이 일부러 찾아올 정도가 되었습니다. 물건만 팔았다면 불가능한 일이죠.
실천 방법:
• 단골 손님 이름과 선호도 기억하기
• 지역 소식지나 행사 안내문 비치하기
• 계절 상품에 대한 작은 팁 적어두기
• 손님들이 의견을 남길 수 있는 공간 만들기
가게를 단순한 상업 공간이 아닌 ‘교류의 장소’로 만들면, 손님들은 그 공간에 애착을 갖게 됩니다.
마무리하며
40년 넘게 크고 작은 가게들을 지켜보고 조언해오면서 깨달은 점이 있습니다. 혼자 고군분투하는 사장님들이 결국 지치고 문을 닫는 반면, 지역과 함께 호흡하는 사장님들은 어려운 시기도 이겨냅니다.
장사는 기술보다 관계입니다. 물건을 팔아 돈을 버는 것이 아니라, 관계를 통해 신뢰를 쌓고 그 신뢰가 다시 장사로 이어지는 선순환 구조를 만드는 것입니다.
오늘부터 한 가지만 실천해보세요. 옆 가게 사장님과 인사를 나누거나, 주민센터에 한 번 들러보거나, 단골 손님 한 분의 이름을 기억해보는 것. 그 작은 시작이 10년 후 여러분의 가게를 지탱하는 큰 힘이 될 것입니다.
사람 중심의 장사, 지역과 함께 호흡하는 장사. 오래된 상인의 지혜이자, 새로운 시대에도 여전히 유효한 성공의 비결입니다.